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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16일 (목)
이백아흔한 번째 이야기
익숙해질 때까지
   
성인(聖人)이 성인이 된 까닭은
‘숙(熟)’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숙(熟) 자를 깊이 음미해 보면
그 의미가 무궁하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聖人之所以爲聖人, 不過一熟字耳.
성인지소이위성인  불과일숙자이

深味熟字, 其意味無窮, 豈不好乎!
심미숙자  기의미무궁 기불호호


-

임성주

(任聖周, 1711~1788), 『녹문집(鹿門集)』 권17 「한천어록(寒泉語錄)」

   
해설
   1730년, 녹문(鹿門) 임성주는 한천정사(寒泉精舍)에서 도암(陶菴) 이재(李縡, 1680~1746)를 뵈었습니다. 젊은 녹문은 노성한 도암에게 그간 학문하며 의문스러웠던 점을 여쭈었습니다. 「한천어록」은 그때 도암과 녹문 사이에 오고 간 대화를 문답식으로 정리해 놓은 글입니다.

 

   녹문이 그 유명한 『논어』의 맨 첫 장,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說乎]”에 대해 묻자 도암은 자세하게 답을 해 주고 이렇게 말합니다. “성인이 성인이 된 까닭은 ‘숙(熟 익숙함)’ 한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 ‘숙(熟)’ 자를 깊이 음미해보면 그 의미가 무궁하니 어찌 좋지 않겠는가!”

 

   사람이 사물의 이치를 제대로 알면 제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성리학의 기본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물치지(格物致知)를 그토록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저 배우기만 해서는 부족합니다. 배워서 알게 된 것을 때때로 익혀서[時習]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도암은 여기에서 ‘숙(熟)’ 한 글자를 강조합니다. 배운 것이 진정 내 것이 되려면 완전히 익숙해지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경전에 나오는 성인(聖人)들도 사실 익숙해질 때까지 자신이 배운 것을 익힌 사람들이었지, 처음부터 우리와 바탕이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도암은 녹문에게 배운 것을 때때로 익히고, 익숙해지도록 해서 종국에 성인이 되기를 기약하는 공부를 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옛사람들은 현대인과 공부(工夫)의 목적도 다르거니와 공부 과정 역시 다릅니다. 지식의 홍수라고 할 만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어느 한 가지만 진득하게 탐구할 여유가 없습니다. 더 많이 보려 하고 더 많이 얻으려 해서 조금이라도 진척이 보이면 어서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는 옛사람들이 특히 경계했던 것들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진득하게 노력하여 익숙해지도록 하는 것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이렇듯 옛사람들의 방식은 ‘더 빨리 더 많이’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 반성(反省)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글쓴이하기훈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책" 메일링서비스의 수신한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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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6일 (월)
사백서른 번째 이야기
조선의 주축활자 갑인자
번역문
   선덕 9년(1434) 7월에 전하께서 지중추원사 이천(李蕆)에게 말씀하셨다.

   “경이 예전에 감독하여 만든 활자로 인쇄한 책들은 참으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다만 글자 모양이 너무 작아 읽기 불편한 점이 있으니 큰 글자로 된 책으로 자본(字本)을 삼아 다시 주조하는 것이 더 좋겠다.”

라고 하시며 그에게 활자 주조하는 일을 감독하게 하고 집현전 직제학 김돈(金墩), 집현전 직전 김빈(金鑌), 호군 장영실(蔣英實), 첨지사역원사 이세형(李世衡), 의정부 사인 정척(鄭陟), 봉상시 주부 이순지(李純之), 훈련관 참군 이의장(李義長) 등에게 실무를 주관하게 하셨다. 그리고 경연(經筵)을 위해 보관된 『효순사실(孝順事實)』·위선음즐(爲善陰騭)』·『논어』 등을 꺼내어 자본으로 삼게 하고, 부족한 글자는 진양대군 유(瑈)에게 직접 쓰게 하셨다. 공역은 그달 12일에 시작하여 2개월 만에 20여만 자를 주조하고 9월 9일에 처음으로 인쇄에 들어가니, 하루에 인쇄한 양이 40여 장이나 되었다. 또한, 활자 모양이나 인쇄 방식이 이전의 활자에 비해 훨씬 더 반듯하고 갑절이나 더 수월해졌다.
원문
宣德九年秋七月, 殿下謂知中樞院事臣李蕆曰: “卿所嘗監造鑄字印本, 固謂精好矣. 第恨字體纖密, 難於閱覽, 更用大字本重鑄之, 尤佳也.” 仍命監其事, 集賢殿直提學臣金墩、直集賢殿臣金鑌、護軍臣蔣英實、僉知司譯院事臣李世衡、議政府舍人臣鄭陟、奉常主簿臣李純之、訓鍊觀參軍臣李義長等掌之. 出經筵所藏『孝順事實』、『爲善陰騭』、『論語』等書爲字本, 其所不足, 命晉陽大君臣瑈書之. 自其月十有二日始事, 再閱月而所鑄至二十有餘萬字. 越九月初九日, 始用以印書, 一日所印, 可至四十餘紙. 字體之明正, 功課之易就, 比舊爲倍矣.

김빈(金鑌, ?~1455), 「갑인자주자발(甲寅字鑄字跋)」

해설
   1434년(세종16) 9월 9일에 갑인자의 주조를 마치고 그 내력을 기록한 김빈의 글이다. 이러한 내용의 글을 주자발(鑄字跋) 또는 주자사실(鑄字事實)이라고 한다. 조선조 활자본 가운데에는 책의 말미에 본문과는 별개로 인쇄에 사용된 해당 활자를 설명한 주자발이 수록된 사례가 종종 보인다. 이 주자발은 활자의 주조에 깊이 관여한 인물이 작성하는 것으로 해당 활자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다. 또한 조선의 금속활자가 대부분 왕명에 의해 주조되는 것인 만큼 조선왕조실록에 활자 주조에 대한 전후의 사정이 기록되어 있다. 이 두 자료를 근거로 조선의 대표적 금속활자인 갑인자의 주조 경위를 알아보자.

   갑인자의 주조는 세종의 나빠진 시력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세종은 젊은 시절 고기 없이는 식사를 못할 정도로 육식을 즐긴 까닭에 몸이 매우 비만했다. 게다가 30세 이후로는 소갈병(당뇨병)에 걸려 하루에 물을 한 동이 넘게 마실 정도로 심했다. 결국, 당뇨 합병증으로 세종은 심한 안질(眼疾)을 앓게 된다.

    왕자들이 먼저 나서 세종에게 기존의 활자인 경자자(庚子字)보다 모양이 큰 활자를 새로 만들자고 건의했다. 인쇄된 책의 첫 번째 독자는 다름 아닌 세종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당시 원로대신인 판중추원사 허조(許稠)까지 합세하여 자신과 같은 늙은 신하들이 노안에 보기 편하도록 큰 활자로 책을 인쇄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세종은 여진족에 대한 북벌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 병기 보충을 위해 구리의 수요가 많았고 그 일을 맡을 기술자들도 부족한 형편이었으므로 잠시 망설였다. 하지만 서적의 간행 역시 꼭 필요한 일이어서 경자자 주조 때 감독을 맡은 경험이 있는 이천에게 다시 책임을 맡기고, 김돈, 김빈, 장영실, 이세형, 정척, 이순지, 이의장 등에게 실무를 주관하게 하였다.

    활자의 바탕이 되는 자본(字本)은 중국 서법의 최고 1인자인 왕희지(王羲之)의 서체로 간행한 『효순사실』과 『위선음즐』 그리고 『논어』에서 뽑는 것으로 정했다. 여기에서 빠진 글자는 진양대군, 즉 수양대군이 직접 써서 보충하게 했다. 활자 주조의 공역은 1434년 7월 12일에 시작하여 2개월도 지나지 않아 20여만 개의 활자가 만들어졌다. 세종은 이렇게 완성된 갑인자를 가지고 먼저 『대학연의(大學衍義)』를 인쇄하도록 정척에게 명하였는데, 하루에 40여 장을 찍어낼 수 있었다. 이는 하루에 20여 장을 찍은 경자자의 두 배나 되는 인쇄량이다. 활자 모양도 이전보다 규격화되어 조판과 인쇄를 하기에 훨씬 수월해졌다.

왼쪽: 1434년에 갑인자로 인쇄한『대학연의』 (미국 예일대학교 도서관 소장)
오른쪽: 1436년에 갑인자로 인쇄한 『근사록집해』(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보물 제1077-2호)

    당시 인력과 물자가 부족한 악조건 속에서 20여만 자의 활자를 주조하는 데에 걸린 기간이  2개월도 채 걸리지 않았고 모양도 한층 정교해진 것은 그만큼 활자의 주조 기술이 발전하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감독을 맡은 이천을 비롯하여 장영실, 이순지 등 실무를 주관한 이들이 모두 세종대 과학기술을 주도한 조선 최고의 과학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갑인자에 글꼴을 제공한 『효순사실』과 『위선음즐』은 어떤 책일까? 『효순사실』은 책 이름 그대로 효성이 지극한 중국의 역대 인물 207명에 대한 사적을 모아 10권으로 편집하여 1420년에 완성한 책이며, 『위선음즐』은 역대의 자선가 165명에 대한 전기자료를 모아 역시 10권으로 편집한 책으로 1418년에 완성되었다.

    두 문헌은 세종 당시 명나라 황제였던 영락제(永樂帝)가 책의 서문을 썼을 뿐 아니라 각 인물의 행적을 직접 시(詩)로 지어 수록할 만큼 편찬에 깊이 관여했다. 따라서 간행이 되자마자 중국 내의 친왕(親王)들과 고위 관료 및 국자감을 비롯한 각급 학교에 배포되었고 조선에도 대량 유입되었다.

    그중에서도 『위선음즐』은 특히 많이 들어왔다. 1419년 6월에 영락제는 성절사 이지숭(李之崇)을 통해 600권을 보내 주었고, 2개월 뒤인 8월에는 명나라 사신 황엄(黃儼)을 통해 1,000권을 보내왔다. 또 그해 12월에는 사은사 이비(李裶)를 통해 22상자를 보내 주기도 하는 등 1종의 서적을 실로 엄청나게 보내 주었다. 갑인자의 주조가 시작되기 직전인 1434년 5월 25일에는 명나라 황제가 보낸 『위선음즐』 441질을 각 관청과 신하들에게 배포하기도 하였다. 『효순사실』은 1434년 세종이 설순(偰循)에게 명하여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를 편찬할 때 많은 영향을 준 책으로, 『효순사실』에 수록된 영락제의 시가 『삼강행실도』에서 그대로 인용되기도 하였다.

    이들 두 문헌은 중국의 황제가 직접 편찬하여 간행한 것인 만큼 외형상으로도 이에 걸맞은 품격을 갖추고 있었으며 당시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가장 많이 유통된 서적이었다. 따라서 갑인자가 이를 자본으로 삼았다는 것은 당대 최신의 품격 있는 글꼴을 수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80년 후 중종(中宗)은 이 갑인자로 인쇄한 책을 보고 종이 품질뿐만 아니라 인쇄 상태도 매우 정교하여 근고(近古)의 서책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고 극찬하면서 그 뒤로는 점점 수준이 떨어졌다고 한탄한 바 있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갑인자는 선조, 광해군, 현종, 정조 등 후대 왕들에 의해 여러 차례 개주(改鑄)되면서 조선말까지 서적의 인쇄 출판에 가장 크게 기여하게 된다.
최채기
글쓴이최채기
한국고전번역원 수석연구위원

주요 저·역서
  • 『고전적정리입문』, 학민문화사, 2011
  • 『서울2천년사』(공저), 서울특별시 시사편찬위원회, 2014
  • 『승정원일기』(인조/영조/고종대) 번역에 참여
  • 『홍재전서』,『졸고천백』,『기언』,『명재유고』,『성호전집』번역에 참여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책" 메일링서비스의 수신한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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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6월 2일 (목)
이백아흔 번째 이야기
칭찬도 과유불급
또 스스로를 낮추고 남을 높이는 데는
역시 걸맞은 실상이 있어야 합니다.
저 긍섭이 일찍이 옛 성현의 글을 보니,
남을 하늘 위로 추어올리고
스스로는 낮은 곳에 처하는 말은 아직까지 없었습니다.

 

且自牧以尊人, 亦有其實.
차자목이존인  역유기실

兢嘗竊觀古聖賢文字,
긍상절관고성현문자

曾未有吹人天上、自處汚下之言.
증미유취인천상   자처오하지언


- 조긍섭(曺兢燮, 1873∼1933), 『암서집(巖棲集)』 권7, 「상곽면우선생(上郭俛宇先生)」

해설
   2002년에 나온 밀리언셀러에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켄 블랜차드가 쓴 이 책은, 그 책장을 넘겨보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로 유명하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남녀노소 누구나 ‘칭찬’하면 이 말을 떠올리곤 한다. 대한민국에 칭찬 열풍을 몰고 온 이 책 덕분에 칭찬에 인색하던 우리 사회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 나의 긍정적인 태도와 관심과 칭찬이 상대를 바꿀 수 있다는 이 메시지에는 사람의 실제 행동을 잘 이끌어내는 밝고 따뜻한 힘이 있으니, 상당히 훌륭한 대인관계론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요즘 매스컴이나 SNS상에 넘치는 과도한 칭찬들을 보다 보면, 이 칭찬 열풍에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곳곳에서 범람하는 오버액션이나 지나친 칭찬을 접할 때면 공감은커녕 괴리감이 들면서 언짢아지곤 한다. 실상과 동떨어진 칭찬은 오히려 아부에 가깝다. 칭찬하는 사람은 할 때는 비굴하고 돌아서면 민망하며, 받는 사람 역시 그것이 과분함을 알기에 받을 때는 흐뭇하나 돌아서면 찜찜하다. 그러니 피차 안 하느니만 못한 것이다. 설령 아부하려는 의도 없이 그냥 서로 간에 듣기 좋자고 하는 칭찬이라 하더라도, 이것은 서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 있다. 그런 칭찬을 주고받다 보면 정작 꼭해야 하는 비판을 꺼리게 되어 직시해야 할 문제를 간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실정에 맞는 칭찬을 강조한 위 편지의 글귀는 경청할 만하다. 조긍섭은 조선 말기의 학자이고, 면우(俛宇)는 그가 스승으로 모셨던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의 호이다. 면우는 당시 영남의 큰 선비로, 유생들이 연서(連書)한 독립호소문을 파리강화회의에 발송했다가 투옥되어 병사한 독립투사이기도 하다. 자신보다 27살 아래인 조긍섭의 이기(理氣)와 심성(心性)에 대한 질의와 논변에 대해, 면우가 “고명하고 탁월하다”, “앞으로 가르침을 구하도록 하겠다”라고 칭찬하자, 그 말씀이 지나치다며 이렇게 정색을 하고 질정에 나선 것이다. 그러면서 당시 사제 간이나 친구 사이에, 실상과 상관없이 서로 추켜세우고 겸손을 부리는 말과 모습을 일삼다 보니 경박하고 가식적인 풍조[澆僞之風]가 만연하게 되었다고 꼬집었다.

    칭찬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이지만, 이 또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인색하지도 않고 지나치지도 않게, 그리고 실정에 맞게 칭찬하는 적정선이 필요하다.

 

글쓴이박은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전문위원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책" 메일링서비스의 수신한 글을 옮김

 

 

우리나라 서기, 단기, 간지와 일본 연호 대조표

서기

단기

간지(干支)

일본 연호

서기

단기

간지(干支)

일본 연호

1897

4230

정유(定酉)

명치(明治)30년

1922

4255

임술(壬戌)

대정(大正)11년

1898

4231

무술(戊戌)

명치(明治)31년

1923

4256

계해(癸亥)

대정(大正)12년

1899

4232

기해(己亥)

명치(明治)32년

1924

4257

갑자(甲子)

대정(大正)13년

1900

4233

경자(庚子)

명치(明治)33년

1925

4258

을축(乙丑)

대정(大正)14년

1901

4234

신축(辛丑)

명치(明治)34년

1926

4259

병인(丙寅)

소화(昭和)원년

1902

4235

임인(壬寅)

명치(明治)35년

1927

4260

정묘(丁卯)

소화(昭和)2년

1903

4236

계묘(癸卯)

명치(明治)36년

1928

4261

무진(戊辰)

소화(昭和)3년

1904

4237

갑진(甲辰)

명치(明治)37년

1929

4262

기사(己巳)

소화(昭和)4년

1905

4238

을사(乙巳)

명치(明治)38년

1930

4263

경오(庚午)

소화(昭和)5년

1906

4239

병오(丙午)

명치(明治)39년

1931

4264

신미(辛未)

소화(昭和)6년

1907

4240

정미(定未)

명치(明治)40년

1932

4265

임신(壬申)

소화(昭和)7년

1908

4241

무신(戊申)

명치(明治)41년

1933

4266

계유(癸酉)

소화(昭和)8년

1909

4242

기유(己酉)

명치(明治)42년

1934

4267

갑술(甲戌)

소화(昭和)9년

1910

4243

경술(庚戌)

명치(明治)43년

1935

4268

을해(乙亥)

소화(昭和)10년

1911

4244

신해(辛亥)

명치(明治)44년

1936

4269

병자(丙子)

소화(昭和)11년

1912

4245

임자(壬子)

대정(大正)원년

1937

4270

정축(丁丑)

소화(昭和)12년

1913

4246

계축(癸丑)

대정(大正) 2년

1938

4271

무인(戊寅)

소화(昭和)13년

1914

4247

갑인(甲寅)

대정(大正) 3년

1939

4272

기묘(己卯)

소화(昭和)14년

1915

4248

을묘(乙卯)

대정(大正) 4년

1940

4273

경진(庚辰)

소화(昭和)15년

1916

4249

병진(丙辰)

대정(大正) 5년

1941

4274

신사(辛巳)

소화(昭和)16년

1917

4250

정사(丁巳)

대정(大正) 6년

1942

4275

임오(壬午)

소화(昭和)17년

1918

4251

무오(戊午)

대정(大正) 7년

1943

4276

계미(癸未)

소화(昭和)18년

1919

4252

기미(己未)

대정(大正) 8년

1944

4277

갑신(甲申)

소화(昭和)19년

1920

4253

경신(庚申)

대정(大正) 9년

1945

4278

을유(乙酉)

소화(昭和)20년

1921

4254

신유(辛酉)

대정(大正)10년

1946

4279

병술(丙戌)

소화(昭和)21년

 

 

소화(昭和) : 1926년 12월 25일 ~ 1989년 1월 7일까지

평성(平成) : 1989년 1월 8일 ~ 2019년 4월 30일까지

영화(令和) : 2019년 5월 1일 ~ 현재

 

 

 

 

 

우리나라 서기와 일본 연호 대조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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夫短綆 不可以汲深井

知鮮 不可以與聖人之言

慧士可與辨物

智士可與辨無方

聖人可與辨神明

 

짧은 두레박줄로는 깊은 샘물을 길어올릴 수 없고

지식이 적은 사람은 성인과 말할 수가 없

총명한 사람은 함께 사물을 변별할 수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함께 한정 없는 사물을 변별할 수 있으며

성인은 함께 신명을 변별할 수 있다

 

 

일반 사람은 남이 자기보다 열 배 나은 것을 알면

오히려 그와 다투면서 '나보다 못하다.'라고 하고

자기보다 백 배 나은 것을 알면 그의 허물을 들추어내며

자기보다 천 배 나으면 대답만 하고는 믿지 않는다

 

劉向의『說苑』「政理」에서 

許鎬九 역주, 社團法人 傳統文化硏究會 발행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율리에 있는 김득신의 묘비글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겠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있을 따름이다."

 

"無以才不猶, 人自畵也. 莫魯於我, 終亦有成. 在勉强而已."

 

 

김득신(金得臣)은 1604(선조 37) ~ 1684(숙종 10), 조선 중기의 시인.

본관은 안동,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

아버지는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치(緻)이며, 어머니는 사천목씨(泗川睦氏)로 첨(詹)의 딸이고,

아내는 경주김씨이다.

 어릴 때 천연두를 앓아 노둔한 편이었으나, 아버지의 가르침과 훈도를 받아 서서히 문명을 떨친 인물이다.

당시 한문 사대가인 이식(李植)으로부터 "그대의 시문이 당금의 제일"이라는 평을 들음으로써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공부할 때에 옛 선현과 문인들이 남겨놓은 글들을 많이 읽는 데 치력하였는데, 그 중 「백이전伯夷傳」은 억번이나 읽었다고 하여 자기의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 이름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천간(天干)의 갑(甲) · 을(乙) · 병(丙) · 정(丁) · 무(戊) · 기(己) · 경(庚) · 신(辛) · 임(壬) · 계(癸)와

지지(地支)의 자(子) · 축(丑) · 인(寅) · 묘(卯) · 진(辰) · 사(巳) · 오(午) · 미(未) · 신(申) · 유(酉) · 술(戌) · 해(亥) 를 순차로 배합하여 예순 가지로 늘어놓은 것.

천간(天干) : 육십갑자의 위 단위를 이루는 요소.

지지(地支) : 육십갑자의 아래 단위를 이루는 요소.

간지(干支) : 십간(十干)과 십이지(十二支) 또는 간(干)과 지(支)를 조합한 것을 이르는 말.

 

 

육십갑자표

간 지

연 도

간 지

연 도

간 지

연 도

甲子갑자

1864

1924

1984

2044

甲申갑신

1824

1884

1944

2004

甲辰갑진

1844

1904

1964

2024

乙丑을축

1865

1925

1985

2045

乙酉을유

1825

1885

1945

2005

乙巳을사

1845

1905

1965

2025

丙寅병인

1866

1926

1986

2046

丙戌병술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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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2006

丙午병오

1846

1906

1966

2026

丁卯정묘

1867

1927

1987

2047

丁亥정해

1827

1887

1947

2007

丁未정미

1847

1907

1967

2027

戊辰무진

1868

1928

1988

2048

戊子무자

1828

1888

1948

2008

戊申무신

1848

1908

1968

2028

己巳기사

1869

1929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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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기축

1829

1889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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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9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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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

1930

1990

2050

庚寅경인

1830

1890

1950

2010

庚戌경술

1850

1910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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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未신미

1871

1931

1991

2051

辛卯신묘

1831

189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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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

1911

197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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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

1932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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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辰임진

1832

1892

1952

2012

壬子임자

1852

1912

1972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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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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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

1893

1953

2013

癸丑계축

1853

1913

1973

2033

甲戌갑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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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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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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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寅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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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

1974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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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5

1935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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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未을미

1835

1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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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卯을묘

1855

1915

1975

2035

丙子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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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申병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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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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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丑정축

1877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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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酉정유

1837

1897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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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巳정사

1857

1917

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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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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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戌무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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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8

1958

2018

戊午무오

1858

1918

1978

2038

己卯기묘

1879

1939

1999

2059

己亥기해

1839

1899

1959

2019

己未기미

1859

1919

197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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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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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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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巳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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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

2001

2061

辛丑신축

1841

1901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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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酉신유

1861

1921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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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

19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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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戌임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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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

1982

2042

癸未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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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3

2003

2063

癸卯계묘

1843

1903

1963

2023

癸亥계해

1863

1923

1983

2043

 

 

카톡 채팅방에서 무려 4시간 여동안 수다 끝에 결국 억새꽃이 한창이니

하늘공원에서 만나기로 한 날 ~ ~

부랴 ~ 부랴 ~ 6호선 월드컵경기장역에서 그냥1호님과 그냥2호님(순서는 나이 순임이더.

우리는 그러다봉게 그냥 만나게 된 사이, 이유 없는

사이랍니다)을 반갑게 만나서 ~

하늘공원으로 go ~  go ~ 

 

 

 

 

 

 

 

그냥2호님의 철프덕(축하꽃다발

선물했그만요 ㅋ ㅋ) 때문에

우리는 계단을 피하고 좌회하는 길을 택하여 걷기 시작했어용 ~

 

 

 

 

 

 

 

 

 

 

 

 

은근 슬쩍 요곳이 살짝 오르막길이라 맹꽁이 전기차가 손님을 태우고 한껏 뽐을 내고 달리구요 !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어야 하고,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어야

내 누님같이 생긴 국화꽃이 핀다는 서정주님의 그 각양각색 국화꽃들이

마음 설렌 세 누님들을 맞아주네여 ~

 

 

 

 

 

 

 

 

 

 

 

 

 

 

 

 

 

오메 ~

억새꽃밭이 장관이네요!! 일단 하늘공원 표지석 앞에서 인증샷 한 - 컷!!

 

 

 

 

 

부랴 부랴 바빠서 점심을 모다들 못 먹고 만났쓰니 배도 고프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

여기 정자 평상위에서 그냥1호님과 그냥2호님이 챙겨오신 음식과 또 탁배기도 한잔 하구요!!

 

 

 

 

 

~ 좋은 곳에서 좋은 분들과 먹었으니 행복이 두 배!!

이제 구경하자구요이 ~

억새에 대해서는 아래를 읽어보시구요!!

 

 

 

 

 

 

 

거울조각을 여러 형태로 잘라 나무에 달아 놓으니 반짝반짝 또색다른 풍경이 되네요!!

 

 

 

 

억새꽃이 장관입니더 ~

커플, 가족, 학생들 ~ 모두모두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네요!!

그냥2호님은 카메라에 담기보다 눈으로 스켄해서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 훨씬 좋단다!!

근디 나는 포스팅 욕심 땜에 어쩔 수 없어라!!

 

 

 

 

 

 

 

 

 

 

 

 

 

 

내 생애 처음이에요, 하늘을 볼 여유가 그 만큼 없었는지

 아님 못 봤는지?

구름 한 점 없이 너무 파래 가슴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파란 하늘입니다

하얀 억새꽃에 설레이는 내 마음을 바람이 살랑살랑 흔들어 파란 하늘에 퐁당 담가 주네요!!

 

 

 

 

 

 

 

 

 

 

 

 

 

 

 

 

 

 

 

 

 

 

 

 

 

 

 

 

 

 

근데요, 아래 사진은 위의 사진을 찍은 장소에서 반대쪽 풍경이구만요

해가 지고 있는 서쪽이서라요, 극과 극 풍경이 참말로 아름답습니다 ~

 

 

 

 

 

 

 

 

 

 

 

극과 극 풍경을 거기 놔 두고 오기가 쪼메 아쉬워 동영상으로 담아 봤어요

한 자리에서 방향만 바꿨는디 직접 보시지요 ~

 

 

 

 

 

씨방에게 다 뺏겼남요, 기력을ㅡ  억새밭 사이에서 워쩐지 추워 보여서요ㅡ

죄송허그만요ㅡ 코스모스님ㅡ!!

 

 

 

 

 

극과 극 모습의 풍차구만요

 

 

 

 

 

 

한강이네요ㅡ

 

 

 

 

 

 

 

 

어떤 양반이 삼발대에 카메라를 올려 놓고 들여다 보면서 연신 샤타를 눌러대고 가드랑게ㅡ

얼른 그 곳에 가서 똑 같은 자세로 우리도 카메라를 대고 들여다 봤지라ㅡ

워메 ~ 요런 사진이 나왔당게요 ~

그래서 그 양반이 거기다 대고 찍어 쌌고 간능게비요잉 !!

 

 

 

 

 

 

 

요것은 작품인가? 주위를 둘러 봐야 되는디, 설명하는 표지판이 있는지 못 봐서ㅡ

원통모양인디 가운데 들어와서 보니 아따 겁나게 멋져버리드라고요 ~

 

 

 

내 포스팅 한 거 보고 무식하다고 해도 어쩔 수 없구만요ㅡ

나는 감탄했당게 ㅡ 내가 찍은 작품에 ~ 

 

 

 

 

 

 

 

요놈은 참 억새라고 지나가는 구경꾼들에게 귀동냥했어요ㅡ

 

 

 

 

 

 

 

아래 사진만 보고는 절대 이해할 수 없음네다!!ㅋㅋ 

그냥2호님의 공주가 부모님께 폰 카바를 선물했다나요ㅡ

근디 폰카바 뒷쪽에 접어진 곳이 있어서 불량이라고 잘 못 사왔다고 그냥2호님이 그랬더니 ㅡ

바같양반께서도 옆에서 보시고 그래ㅡ 불량을 사왔네!! 하시더라나요ㅡ

에궁ㅡ 접어진 곳은 다 이유가 있는 정품인디ㅡ

아이구메나ㅡ 배꼽이야 ㅋ ㅋ

그러고 있는 중에 그냥1호님이 찍은 완전 리얼리티 순간 포착입니다요 ㅋ ㅋ  ~

 

 

 

 

 

억새꽃밭에서 추억을 한 줄 남기고 우리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나오는디ㅡ

초승달이란 놈이 하늘에 폴짝 올라 앉아 있잖아요ㅡ

서서 초승당을 보면 그 달 한 달이 그냥 바쁘고, 누워서 보면 한가하게 한 달을 지낸다나요ㅡ?

그냥2호님이ㅡ ㅡ ㅡ

야사에 있남요? 물었드니 그렇다나요ㅋ ㅋ  믿던지 말던지ㅡ

그리구서 오늘 카톡으로 어제 초승달을 봐서 집나오게 됐대요, 글씨ㅡ

그러문 지와 그냥2호님은 워쩐데요ㅡ 한 달을 

ㅠㅠ

책임지셔유ㅡ ㅡ ㅡ, 아셨지라!!!

 

 

전통사회에서 행하던 혼인의 6가지 절차를 六禮육례라 하며, 그 첫번째는 納采납채, 두번째는 問名문명, 세번째는 納吉납길, 네번째는 納幣납폐, 다섯번째는 請期청기, 여섯번째는 親迎친영이라 한다.

육례의 의식은 중국 周주나라의 周公주공이 지은 것으로 알려진《儀禮의례》士婚禮사혼례에서 비롯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주자학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관혼상제의 의식은 철저하게《가례》에 의거하게 되었으며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혼인은 人倫之大事인륜지대사 중 하나이다.

그 인륜지대사 중 하나인 작은 아들의 혼인식이 2014년 11월 22일 토요일 11시 30분에 있을 예정이다

수확의 기쁨을 안겨주는 청명한 가을날 예비사돈댁에서 정중하게 예를 갖춘 예단이 왔다. 예비며느리인 현지가 정성드려 쓴 손편지도 함께~

편지지와 봉투에는 마른 꽃과 잎을 장식하여~  

이렇게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운 편지를 받으니 참 행복했다. 물론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참으로 기특하기만 하다^^

 

 

육례 중 네번째 납폐는 혼인할 때에, 사주단자의 교환이 끝난 후 청혼이 이루어진 증거로 신랑 집에서 신부 집으로 예물을 보내거나 또는 그 예물을 말한다. 보통 밤에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을 혼서와 함께 함에 넣어 신부 집으로 보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의 흐름에 맞추어  납폐의 예를 갖추고, 혼서와 봉투를 써서 정성스럽게 포장을 하였다. 이 절차에 포장된 비단보자기는 결국 시중에서 구입하였으니 이것도 또한 시대의 흐름인가~ 정성이 결여됨이 부끄럽다.

그리고 조금은 어색했지만 순원왕후어필의 봉투를 보면 근봉, 입납 등 한글이 자연스럽게 쓰여 있어 나는 개의치 않고 모든 형식을 한글로 썼다~

 

 

                             예물은 요즘의 추세로 준비하고~

 

 

   비단보자기로 싸아서~

 

 

상자에 담구요~

 

 

         한지로 포장하였다~

 

 

 

혼서를 정중하게 궁체 정자로 쓰고~

크기: 길이 36cm x 넓이 60cm

(9칸으로 접어 양쪽 한 칸씩을 비우고 7칸에 아래의 내용을 쓴다) 

 

▲ 나주 임공 채석 선생님께

         풍성한 결실을 마무리하는 즈음에

         귀댁의 평안하심을 앙축하옵니다

         저의 아들 중건이를 사랑으로

         받아 주시고 귀댁의 소중한 따님

         현지양을 아내로 맞이하도록

         허락하심은 저의 집안의

         큰 영광이옵니다

         이에 삼가 납폐의 예를

         갖추지 못하였으나 너그럽게

         살펴 주시기 바라옵니다

                 이천십사년 시월

                 파평 후인 윤태봉 드림

 

 

                         ▲ 혼서를 넣은 봉투의 앞과 뒤

 

 

▲ 혼서를 싸기 위해 시중에서 구한 비단보자기의 앞과 뒤

 

 

  ▲ 비단보자기에 싼 혼서를 근봉(謹封: 삼가 봉하다)이라 쓴 띠로 3군데 묶는다.

  크기: 길이 10cm 

 

 

                                         ▲ 이렇게 하여 마무리~

 

 

▼ 위의 준비한 것과 함께 보내기 위해 간소하게 준비한 음식~

 

 

 

 

함 사세요~~

함을 진 젊은이들이 골목에서 오징어 가면을 쓰고 함을 파는 모습이

요즘은 보이지 않는다. 

아들도 오늘 자동차로 실어 갔으니~

그런 정겨운 전통문화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중건이와 현지의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또 하나의 절차가 끝나고~

부디 사랑으로 만났으니 어려울 때나 힘들 때~

사랑으로 서로를 품어 용기를 주고~

서로를 인정하는 아름다운 삶을 위해 기도한다.

 

사돈댁에 결례가 되지나 않았는지~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정성으로 받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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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 3시 7호선 뚝섬유원지역을 나와

 

맑은 하늘~

잔잔한 강물~

맛있는 바람~

 

늘빛 선생님의 감탄삽니다~

 

하늘, 바람, 햇볕, 구름, 흐르는 강물 . . .

모두가 가을을 품고 있었다.

늘빛선생님과 나는 뚝섬유원지역을 나와 중랑천을 향해 출발하였다.

그동안 축축했던 바람도...

햇볕도...

상큼하게 내 몸을 감싸고,

하늘의 구름은 파란 가을을 그려주었다~ 

그리고 잔잔한 강물 위에 움직이고 있는 윤슬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한참을 한강의 정취에 이끌려 걷다가 강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준비해 온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정화시키고~

깊은 호흡으로 가을을 담았다!!

앉은 자리에서 왼쪽을 담았구요~ 

 

 

 

오른쪽을 사진에 담았다.

 

 

 

 

 

그런데 강물 위의 물결무늬가 왜 부분부분 다를까?

한가롭게 강물을 바라보니~ 사진으로도 보인다!!

 

 

 

 

 

주말 오후라서 그런지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과의 사이에 피어 있는

코스모스와 여러 꽃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가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한들거리는 코스모스는 청초함을 한껏 드러내고 있었구요~!!  

 

 

 

 

 

 

 

 

 

 

 

 

 

 

 

 

 

 

 

 

 

 

중랑천으로 들어서는 곳에 놓여 있는 벤취,

왠지 쓸쓸해 보였다, 비어 있어서일까?

 

 

 

 

늘빛선생님과 나는 중랑천을 조금 걷다가 한양대학교가 있는 곳으로 빠져 나왔다.

해가 넘어가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면서

도시의 빌딩들은 서서히 불을 밝히기 시작하였구요.

맑은 바람, 상큼한 공기를 마시며~

잔잔히 흐르는 물과 아름다운 윤슬을 바라보며 

한강변을 걸으니 정말 힐링이 되었다.

이렇게 좋은 곳으로 불러주신 늘빛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무심한 저는 잘 들어가셨는지 연락도 못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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