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궁체의 예술성

                                                                                                         꽃뜰 이미경(1996년 5월 21일)

 

 

 

   우리나라 글자는 서사를 목적으로 한 글씨라 예술성이 부족하다고들 한다.

   세계 어느 나라 글자든 처음에야 의사 전달의 기호에 지나지 않았겠지만 필기구와 서법이 발달함에 따라 시각적인 관점에서 예술성이 가미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서사만을 목적으로 했던 조선조 중종 때까지는 한글에서 예술성을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필묵을 가까이 하는 서사 상궁들의 서법과 서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궁체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고 조선조 말기에 이르러서는 격조 높고 세련된 궁체의 완숙미를 보였던 것이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본능이 필사를 평생의 일과로 하는 상궁 나인들에도 작용하여 오늘날과 같은 예쁜 궁체 글씨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서예가 미술적인 면에서는 예술성이 낮다고들 한다지만 이는 소리글자인 우리 서예가 미술 쪽보다는 음악과 문학 쪽에 더 무게가 실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데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문학과 음악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람의 마음에 아름다움을 불러일으키는 시간 예술이듯이 시간 예술이듯이 궁체 서예는 그 운필에 따라 강약의 조화를 이루며 율동적으로써 나가는 것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과 같고 그 율동미 억양 속도에서 시간성을 연상하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음악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할 것이다. 국악에 있어서 감정 표현을 극단으로 치닫지 않게 절제한 것을 정악이라고 한다. 유한하고 평화롭고 고아한 정악은 느린 것이 특징이다. 속악에 있어서 빠른 곡은 장단 고저의 많은 변화가 감정을 자유분방하게 표현한다. 속도가 느린 정악은 음악성에 있어서 그 기술이 더 어렵기 때문에 음의 강함과 유함의 농담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 궁체도 강한 힘은 획 속에 숨기고 겉은 유한 필법 즉 힘의 강한 표현이 절제된 고아한 품격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속도가 빠르지 않다.

   속도가 빠른 진흘림은 리듬감을 표현하기가 쉽지만 정자나 반흘림은 획에 있어서 강약의 표현이 진흘림에서보다 어렵고 선질에 있어서 밀도 높게 다져진 세련미가 훨씬 더 요구된다.

   그러므로 궁체는 획의 절제된 강약의 표현과 세련된 선질과 율동적인 운필에서 그 예술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궁체는 정교하고 섬세한 예술이라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된다. 필법이 무시된 교한 글씨도 안 되지만 필법에만 의지하고 스스로 얻어낸 묘가 없는 것도 물론 안 된다.

   오랜 공부에서 자기의 멋이 우러나야 예술성이 나타난다. 이렇듯 궁체를 공부함에 있어서 많은 세월이 필요하고 풍부한 감수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궁중에서 어린 소녀들에게 일찍부터 글씨공부를 시켰던 것이고 이것은 음악에 있어서 조기 교육이 필요한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궁체 예술의 특징은 정성이 담긴 정교한 솜씨의 전문성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참되고 착하고 정성스런 마음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곡진한 마음이 없이는 궁체의 정신을 나타내기 어렵다. 음이 모여 동기가 되고 악구가 되고 악절을 이루듯 점과 획이 모여 글자를 이루고 낱말을 이루고 귀절을 이룬다. 성악에 있어서 호흡이 중요하듯 글씨에 있어서도 호흡이 자연스러워야 글씨가 편안하다.

   또한 줄글이나 시에 따라 쓰는 이의 감정이 거기에 나타난다. 이와 같이 글의 호흡에 맞춰 쓰는 이의 감정이 필순에 따라 다양한 선질로 지면에 나타날 때 조형미가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한글 서예는 필법과 필세의 기본적인 기법으로 우리 글귀의 호흡에 맞춰 음악적인 리듬의 운필이 자유로울 때 예술성이 나타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 중의 하나다. 세종대왕 시절 한글을 만들어 낸 학자들이 우리 글자를 많이 사용하면서 읽히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씨를 그 목적에만 머무르지 않고 상궁들의 예술적인 안목과 창의력으로 삼백 년 동안 꾸준히 가꾸어 오는 동안에 소리글자를 이렇게 훌륭한 예술로 승화시킨데 대해서 놀라움과 고마운 마음 금할 길 없다.

 

 

『꽃뜰 이미경 100세 특별전』서집에서 옮긴 글

첫째, 字體의 정의

 

  '자체'는 글자의 형체이니 '자형'이라 할 수 있다. 자형의 구조는 일정한 공동 원칙에 부합하고, 점과 획의

 

형태와 조합방식은 공통적 특징을 갖춘 문자를 통상 '자체'라고 일컫는다. '자체'는 전적으로 문자발전 변천

 

에서 나타난 각종 특징적인 형체의 형식이다. 한자로 말하면, '六書'를 원칙으로 삼아 형성한 '자체'를 말한 

 

다. 예를 들면, 갑골문 · 대전 · 소전 등은 古文字에 속하고, 예서 이후부터 한자는 단순한 문자부호가 되었으

 

니, 이를 今文字라고 하며 예서 · 해서 · 초서 · 행서 등이 이에 속한다.

 

 

둘째, 書體의 정의

 

  '서체'는 '자체'를 서사한 형체이니, 이는 곧 문자를 필법에  따라 붓으로 서사함에 일정한 특징과 성정이

 

드러난 형체를 말한다. 우리가 서예라고 하는 것은 바로 이를 가리킨다. 따라서 '서체'란 서예의 각도에서 말

 

하면, 문자를 서사하는 중에 어떤 공통적인 특징이나 풍격을 갖춘 것을 가리킨다. 이는 다음과 같이 넓은 의

 

미와 좁은 의미로 나눌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서체'는 '자체'를 붓으로 서사함에 어떤 공통적인 특징을 갖추며 스스로 계통을 이룬 것을 가

 

리킨다. 예를 들면, 갑골문 · 금문 · 전서 · 예서 · 해서 등이 그러하다. '서체'는 '자체'의 형성과 발전에 따라

 

점차로 풍부해졌는데, 고대에서는 때때로 '자체'가 곧 '서체'였다. 그러나 서예가 아직 독립적 예술로 형성되

 

지  않았던 진 · 한시대 이래로부텨 '자체'가 기본적으로 정해지고, 서예가 점차로 독립적 예술로 발전함에

 

따라 '서체'는 비로소 '자체'와 분리되어 독립된 체계를 형성할 수 있었다.

 

  좁은 의미의 '서체'는 당나라 이후부터 어느 '자체'가 서예가의 손을 거쳐 독특한 필법으로 형상화되고, 용

 

필과 결구에서 일정한 체계를 이루며, 전형적인 규범과  개인의 독특한 심미관을 나타내어 역사의 검증을 거

 

친 글씨를 가리킨다. 예를 들면, 歐體 · 顔體 · 柳體 · 體 · 瘦金體 · 六分半書 등이 그러하다.

 

 

셋째, 書風의 정의

 

  서풍은 일종의 표현 형태로 서예작품 전체에 나타나는 대표적 특징이며, 이를 개인서풍과 시대서풍으로 나

 

눌 수 있다.

 

  개인서풍은 서예가의 주관적 특징과 작품의 내용, 그리고 필묵의 기교로 표현한 형질과 신채 등을 융합한

 

후에 나타나는 독특한 풍모를 가리킨다. 서예에서 가장 강구하는 것은 자신의 면모와 정신, 그리고 풍채가 있

 

는 것이며, 가장 배척하는 것은 남의 것만 모방하면서 그대로 따라가는 '奴書'이다. 따라서 서예가는 옛사람

 

을 융해하여 변화함에 있어서 자신의 독특한 예술 풍격이 나타나도록 표현하는 것을 강구해야 한다. 서예작

 

품에 선명한 예술 개성과 독창적인 풍격을 갖추고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서예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풍

 

격은 바로 그 사람을 그대로 나타낸다고 하겠다.

 

  시대풍격은 시대가 점차로 변화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서풍을 말한다. 이는 당시의 정치 · 경제 · 문화 · 

철학 · 종교 · 풍속 · 습관 · 문예사조 등 각 방면의 영향을 받는다. 한나라 말에 이르러 전서 · 예서 · 해서

 

· 행서 · 초서의 5가지 '서체'가 정비됨에 따라 '자체'와 '서체'가 서로 중복되고 합치되면서 발생하는 상황이

 

기본적으로 완성되었다. 이에 따라 서예의 풍격도 간단하게 '質文數遷', 즉 순박함과 연미함이 서로 번갈아

 

변하는 양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이후 진 · 당 · 송 · 원 · 명 · 청나라의 서풍이 다름

 

은 바로 이러한 시대서풍에서 비롯된 것이다.

 

 

넷째, 筆體의 정의

 

  '筆'자의 구조에서 보는 바와 같이 '筆'은 '竹'과 '聿'이 합쳐져서 된 글자이다. 『說文解字』에서는 '聿'에

 

대해 "글씨를 쓰는 도구이다. 진나라 이래 비로소 竹을 덧붙여 筆자가 되었다[所以書之具也, 秦以來始加竹以

 

作筆也]."라고 풀이하고 있다.『설문해자』의 이러한 설명을 통해 보았을 때 '筆'은 '書'와 마찬가지로 '聿(쓴

 

다)'의 뜻을 취해 이루어진 글자이므로 '書'와 '筆'은 사실상 같은 의미의 글자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필

 

체'는 곧 '서체'와 같은 뜻이다.

 

 

  이상을 보면 '자체'는 주로 문자학 각도에서 말하는 것이고, '서체'는 주로 서예의 각도에서 말하는 것이며,

 

'서풍'은 서예작품에 나타난 풍격을 말한다.

 

 

「한글서체명칭통일 방안모색」(제1단계 명칭통일 백서), 한글서체명칭통일추진위원회, 곽노봉(동방대학원대학교 서화심미학과 교수)

 

 신채(神采)

 

   역대로 서예작품을 평론하는데 모두 신채를 최고의 표준으로 삼았고, 서예가도 추구하였던 목표이다. 이

 

른바 신채는 서예작품에 표현된 정신· 신기· 풍채를 가리킨다.

 

    서예 용필에서 제일 먼저 요구하는 것은 곧 필력이다. 필획의 기본 요구는 탄력성을 갖추는 것이고, 필획

 

사이는 조화와 호응을 이루며, 기맥이 관통하여 체세가 영활하고 생동함을 요구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살아 있는 표현이고 생명의 표현이니, 정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기초이다.

 

   신채는 서로 다른 정신 면모의 표현으로 내재된 수양의 표현이므로 모방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직 숙련된 용필과 결체의 기본이 있어야 하고, 이는 단지 기술성의 문제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

 

이 되려면 풍부한 문화지식 · 생활관찰 · 품격수양 · 정취구상 등 모든 방면에서 많은 공부를 한 연후에 비

 

로소 숙련된 용필을 통하여 신채를 표현할 수 있다.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설령 숙련된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쓰인 작품은 분명 신채가 있지 않을 것이므로 글씨 밖에서 글씨를 구하는 서외구서(書外求書)의 의의도 바

 

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사기법』156p ~ 157p, 주준걸(저) 곽노봉 · 이정자(옮김), 다운샘, 2013

 

 

 

서내구서(書內求書)와 서외구서(書外求書)

  

   문자 발전이 오늘날에 이르러 필획의 결체가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적으로 약속된 정형화의 규범을

 

이루었다. 서예를 하려면, 이전 사람들의 이러한 문자의 용필과 포백 방면에 쌓인 풍부한 규율성의 성과를

 

서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서예를 배우려면 이러한 법을 따르는 것이 효과적인 지름길이다. 이는 서예를 배우

 

는 방법이니, 곧 서내구서(書內求書)이다.

 

   서예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서내구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서내구서'의 목적은 옛사람이 쌓은 기초

 

에서 앞으로 향하여 더욱 빠르고 멀리 나아가려고 하는 데에 있으니, 이것이 곧 창신이다. 이러므로 창신은

 

구체적 양식이 없고, '서내구서'로부터 나와 넓은 경지에서 새로운 계시를 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서외구

 

서(書外求書)이다.

 

   '서외구서'로 나아가는 길은 자매예술에서 찾는다. 예술의 종류는 비록 천변만화하더라도 도리와 규율은

 

공통적이다. 장회관이 일찍이 서예는 "형태가 없는 글씨이고, 소리가 없는 음악이다."라고 하였으니, 회화

 

의 구도는 곧 서예의 장법이나 포백이 아니겠는가? 문인화의 추상적 의미는 서예의 형상과 서로 비슷한 곳

 

이 있지 않은가? 그 묵색의 농담변화는 오늘날 서예에서 일으킨 풍부한 작용이라 하지 않는가? 이는 "신채

 

를 으뜸으로 삼고, 형질을 버금으로 삼는다."라는 최종적 요구와 더욱 일치하고 있다.

 

   '서외구서'의 또 다른 길은 사회생활과 대자연에서 서예의 비결을 깨닫는 것이니, 이러한 예는 예로부터

 

많이 있었다.

 

   장욱은 짐꾼과 공주가 길을 다투는 것(擔夫爭道)을 보고 필법을 깨달았고, 외로운 쑥이 스스로 떨치고 놀

 

란 모래가 앉아 나는 것(孤蓬自振, 驚沙坐飛)을 보며 서예를 생각하여 기이함을 얻었다. 회소는 여름 구름

 

에 기이한 봉우리가 많은 것(夏雲多奇峰)을 보고 글씨 형태의 변화막측함을 깨달았다. 황산곡은 산협에서

 

장년이 노를 크게 젓는 것(長年蕩漿)을 보고 필법을 깨달았다. 원나라의 선우추(鮮于樞)는 두 사람이 진창

 

에서 수레를 끄는 것을 보고 용필의 오묘함을 깨달았고, 문여가(文與可)는 뱀이 싸우는 것을 보고 초서가

 

크게 진보하였으며, 채옹(蔡邕)은 장인이 벽에 회칠하는 것을 보고 비백서를 창안하였다.

 

   옛사람이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걷는다."라고 한 뜻은 예술 수양을 향상시키고 안목을 넓히며

 

느낌을 증가하여 스스로 정진하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만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만 리의 길

 

을 걷는 것만 같지 못하고, 만 리의 길을 걷는 것은 만 개의 봉우리를 오르는 것만 같지 못하다(讀萬卷書, 不

 

如行里路, 行萬里路, 不如登萬座峰)."라고 하였다. 이는 흉금에 있는 만 개의 골짜기와 기이한 산봉우리가

 

있을 때 글씨를 쓰면 기상이 뛰어나고 변화의 무궁함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서외구

 

서'로 자외공부(字外功夫)의 뜻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공력은 매우 강하지만 쓴 글씨는 오히려 정취와 맛이 없어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원인

 

은 학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공력, 즉 기술을 떠날 수 없지만 기술은 예술과 같지 않다. 기술은 단

 

지 예술을 위하여 쓰였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옛날부터 서예가는 다방면의 '자외공부'에 달관한 문인들

 

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는 물론 역사에 한정된 것이지만 글씨만 쓴다고 서예에서 많은 성취를 거둘

 

수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예의 최고봉은 최종적으로 '서외구서'에서 다방면의 '자외공부'를 갖

 

춘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서사기법』167p ~ 171p, 주준걸(저) 곽노봉 · 이정자(옮김), 다운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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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생활의 향상에 따라 서예를 좋아하고 배우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서예와 붓글씨는 사용

 

하는 도구가 서로 같음으로 말미암아 종종 동일하게 취급하였는데, 특히 일상에서 이미 붓글씨를 사용하

 

 않는 오늘날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두 가지의 목적과 요구는 서로 같지 않고

 

효과와 가치도 판이하게 다르다.

 

  붓글씨의 주요 목적은 실용이므로 단지 필획이 분명하고 글자체가 단정하면 된다. 그러나 서예는 실용뿐

 

만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반드시 감상과 심미가치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성이 있고

 

없는 것이 서예와 붓글씨를 구별하는 근본 표준이다. 오늘날의 붓글씨는 실용을 위한 것은 아니지만 아직

 

일정한 예술성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서예라 단정할 수 없다.

 

  서예는 예술 창작의 일종이다. 서예의 예술성은 필묵 · 결체 · 장법 · 신운 · 정취 등 여러 방면에서 나타난

 

다. 예를 들면, 필획은 단지 평평하고 곧을 수 없고, 필력과 입체감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기필 · 행필 · 수

 

필 · 제안 · 사전 등에서 모두 엄격한 요구가 있다. 따라서 서사한 필획은 혹 추획사와 같고, 혹 절차고와 같

 

으며, 혹 옥루흔과 같아야 한다. 먹색은 진하고 엷고 마르고 윤택함(濃 · 淡 · 枯 · 潤)의 구분이 있어야 하므

 

로 모두 검고 빛나며 밝을(黑 · 光 · 亮) 수만은 없다. 결자는 균등하고 평정하여야할 뿐만 아니라 또한 기울

 

고 치우치고 성글고 조밀한 변화가 있어야 하며 "성근 곳은 말을 달릴 수 있고, 조밀한 곳은 바람을 통하지

 

않도록 한다." 점과 획은 서로 호응하고 형태는 많은 자태가 있어야 하며, 절대로 4개의 점을 같은 모양으로

 

배열해서는 안 된다. 만약 점을 바둑알처럼 같은 크기로 배열한다면 이를 '포기(布棋)'라 하고, 필획도 땔나

 

무처럼 뻣뻣하면 이를 '속신(束薪)'이라 한다. 이는 모두 서예에서 금기하고 있다.

 

  전체 장법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종횡으로 행을 이루어야 완전하다고 하겠다. 각 행마다 행기가 관통하

 

고, 글자의 형체는 크고 작은 변화와 바름과 기울음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느리고 빠르며, 질탕과 기복은

 

마치 음악과 같이 절주와 운율이 있어야 한다. 전체 작품은 선명한 풍격, 예를 들면 유려(流麗) · 전아(典雅)

 

· 고졸(古拙) · 옹용(雍容) · 노랄(老辣) · 치졸(稚拙) · 비동(飛動) · 야일(野逸) · 무밀(茂密) · 소담(疏淡) 등

 

강렬한 예술적 느낌이 있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붓글씨는 단지 필획만 쓰는 것이니, 이는 마치 아무 생각 없이 길만 걸어가는 것과 같다. 혹자

 

는 마치 습관처럼 표정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반복적으로 쓰기만 하는데, 이와 같은 글씨는 당연히 평담

 

할 뿐이다. 그러나 서예는 느낌 · 온양 · 구상 및 막을 수 없는 표현의 욕망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서예작

 

품은 강렬한 정감을 갖추어 감상자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서예는 이미 예술창작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성공한 작품은 종복할 수 없는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 붓글씨는 틀린 글자를

 

제외하고 거의 실패할 일이 없으니, 인쇄기처럼 반복하여 써 내려 갈 수 있다.

 

서예와 붓글씨는 바로 이와 같은 구별이 있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몇 천 년 동안 많은 지식인들이 비록 붓으

 

로 글씨를 썼지만, 공인을 받고 탁월한 성취를 이룬 서예가는 결코 많지 않았다. 현재 일상에서 사용하는 실

 

용적 서사는 이미 만년필 · 볼펜 · 연필 등의 경필로 대체되었고, 붓으로 글씨를 쓰는 것은 대부분 감상과

 

성정을 깃들이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따라서 붓글씨가 곧 서예라 할 수 없고, 서예는 일정한 기교

 

공부와 예술 수양을 갖추어야 한다.

 

 

추획사(錐劃沙) : 서예의 선을 붓과 종이 대신 송곳으로 모래에 그으면, 모래의 형태가 양변으로 볼록하게

 

                        일어나고, 중간은 오목하게 들어가며, 선이 그어져 침착하면서도 험절한 형세가 나타난다.

 

                        이를 흔히 중봉(中鋒)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하곤 한다.

 

 

절차고(折釵股) : 이는 비녀다리가 부러져도 구부러진 형체는 여전히 둥글다는 것을 기리키는 말이다. 서예

 

                        에서는 이것으로 전절하는 곳의 용필과 예술효과를 비유하였다. 또한 필획을 전절할 때는

 

                        붓털을 종이 위에 평평하게 펴서 필봉을 바르고 둥글게 해야지 비틀어 구부려서는 안 된

 

                        다.

 

 

옥루흔(屋漏痕) : 이는 세로획 용필과 예술 효과를 비유한 말이다. 세로획의 행필은 절대로 곧게 쏟아져 내

 

                        리지 말고 손과 팔을 미미하게 좌우로 돈좌(頓挫)하며 운행하여야 한다. 마치 집의 벽에 새

 

                        는 물이 꿈틀거리며 내려가 머문 흔적이 포만하고 원활하며, 생동하고 자연스러운 것 같이

 

                        하여야 한다.

 

 

『서사기법』7p ~ 9p, 주준걸(저) 곽노봉 · 이정자(옮김), 다운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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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예의 특징

 

      "서예는 문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예술이다. 그래서 서예는 문자가 지닌 원초적인 기능인. 의사전달

 

    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만약에 서예가 문자의 의사전달 기능에만 중점을 둔다면 서예는 이미 예

 

    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예가 예술성을 지니고 있다고 해서 미술이나 는 조각 등과 동일한

 

    성격을 지닌 예술도 아니다. 서예는 어떤 면에서는 그림이나 조각과 문자의 중간에 위치하는 예술의

 

    성격을 지닌고 수 있다. 서예가 다른 예술들과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서예가 '문자'라고 하는 독립

 

    된, 분명한 대상이 있다는 점일 것이다. 문학도 문자를 매개체로 한다지만 그것이 표현하는 세계는 서

 

    예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래서 서예는 미술 속에 부속되어 있는 예술이 아니라 완전히 독립된 하나

 

    의 예술인 것이다.

 

      에술은 과학이나 학문과는 대립되는 특성을 지닌 것으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서예는 예술적인 특

 

    성을 지니면서도 한편으로는 학문적이며 과학적인 특성을 지니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서예에서 직접

 

    다루는 대상이 문자이기 때문에 문자를 과학적으로 다루는 학문인 문자학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뿐만 아니라 서예에서는 단순한 문자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문자의 조합과 배열로 된 아름다운 글

 

    을 대상으로 하려 하기 때문에, 과학적인 학문인 언어학과 예술성을 지닌 문학과도 깊은 연관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주지하는 바와 같이 문자나 글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기 때문에 그것은 미술이나 조

 

    각과 같은 예술과도 연관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예는 인류의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는 말과 문자의

 

    학문적인 속성과, 그림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의 모든 특징들을 종합하여 표현하는 종합예술인 것이

 

    다. 앞에서 서예가 문자를 대상으로 한 종합예술이며 그래서 독립된 하나의 예술이라고 한 의미는 이

 

    러한 데에 근거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서예의 극치는 그 글씨에서 그 글씨를 쓴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야 하고(언어학

 

    적), 그 글의 의미와 감정이 정확히 전달되어야 하며(문자론적, 문학적), 심지어는 그 내용이 화상 이

 

    미지로도 환기될 수 있을 정도로 전달성이 높아야 한다(미술적)고 생각한다. 이것은 문학작품인 詩가

 

    문자로만 되어 있지만, 그 문자를 읽으면서 시인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그리고 詩畵가 떠오르는 것

 

    과 같은 동일한 맥락에 속할 것이다."

 

          ♣ 홍윤표,「디지털 시대의 한글 서체에 대하여」세종한글서예큰뜻모임 창립 2주념 기념

 

                       제2회 한글서예전국학술대회, 2001. 4.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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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체의 '형성설'

 

   한자 필사가 손에 익은 당시의 지식계층에 의해서 주류서체로 자리 잡은 것은 송설체의 영향 하에서 점진

 

적인 변화를 거치며 하나는 궁체로 다른 하나는 민체(일반체)로 변화해 나가게 된다. 그 변화의 중심에는 송

 

설체의 이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으며,『동국정운』,『홍무정운역해』,『상원사중창권선

 

문』등을 통해서 그러한 변화의 조짐을 읽어낼 수 있다. 특히『상원사중창권선문』은 한글서예사적 측면

 

에서 판본체(한글고체) 이후 하나는 궁체로의 전변과 다른 하나는 민체(일반체)로의 전변을 이끌어내는 分

 

岐로서 주목해야 한다.

 

   (중략) 궁체는 단순히 궁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조선사회 우리 문자문화에 깊이 이식되어 있

 

던 송설체가 궁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판본체(한글고체)와 한자

 

가 함께 사용되는 과정에서 송설체의 이식은 문화교섭사 측면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 김찬호,「한글 ‘궁체’의 비평적 검토」한국서예비평학회 제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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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체(宮體)

   조선 시대에, 궁녀들이 쓰던 한글 글씨체. 선이 맑고 곧으며 단정하고 아담한 점이 특징이다. 국립국어연구원 편『표준국어대사전』


  “궁체는 궁녀들이 쓴 글씨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궁녀라고 아무나 다 이 궁체를 썼던 것은 아니다. 이 궁체는 지밀에 소속된 궁녀들이 배우고 익힌 글씨인데 그 익히는 과정이 특수하다 할 만하다. 4세라는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온 아기나인들이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글씨공부는 해야만 하는데 그날 쓴 그 분량이 계획된 소정의 분량 만큼에 미치지 못하였거나, 또는 글씨의 질이 바라던 만큼의 수준에 다다르지 않으면 밥도 주지 않고 글씨 쓰기 공부를 시켰던, 가혹하리만큼 엄한 교육과정을 거쳐서 쓸 수 있게 된 결과물이 바로 궁체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은 궁 안의 다른 부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오직 지밀에서만의 서예 교육인 것이고 그 산물인 것이다.”

♣ 한국한글서예연구회,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한글궁체사』다운샘, p.52 ♣ 

 

  “『내훈』의 규율을 바탕으로 생활하여야 하나 그들에게는 일정한 봉사를 해야 할 임무는 있을지언정 그들의 개성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는 없다. 그들이 수행해야 할 모든 것은 엄격하게 통제된 상태에서 직무수행만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자율적인 개성의 표출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궁녀들은 법에 맞는 글씨를 써야만 했다. 이것이 궁체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궁체를 접할 때 그 점획(點劃) 속에 감추어진 정신, 겉으로 보이지 않는 그 숨결을 찾아 읽어야 할 것이다.

  생성(生成) 당시의 궁체에는 흘림체라는 글씨꼴이 있을 수 없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궁체라는 것은 수렴청정을 하는 대왕대비인 정희왕후에게서 비롯된, 매우 엄격하고 근엄한 상황에서 생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서 70여 년 후 문정왕후가 또 10년에 가까운 오랜 동안 섭정을 했기 때문에 이 궁체는 그 원형을 지키면서 발전해 갔던 것이다.

  그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한 소설문학의 대중화로 독자들의 수는 크게 늘게 되자 세책방(貰冊房)이라는 새로운 업종(業種)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 세책방에서는 남성들의 글씨보다는, 아담하고 정교하고 섬세하게 쓴 읽기 편한 궁녀들의 글씨를 선호하는 독자들을 생각해서 소설 필사(筆寫)의 축을 궁녀에게로 돌리게 되었다.

  그래서 세책방에서는 휴가를 나오는 궁녀들과 접촉해서 그들에게 소설필사의 청탁을 하게 되었고, 궁녀들은 궁핍한 부모의 삶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 그 청을 받아 필사를 하게 된다. 그러나 허락된 휴가는 짧고 써야할 분량은 많은 터라 서두르지 않을 수 없고, 그러자니 운필에 속도를 더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필연으로 흘림이라는 서체가 나타나게 되었는데 이것이 궁체의 자체에도 변화를 가져 오게 되었고, 그것이 곧 궁체의 흘림이라는 한 독특한 자체(字體)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한국한글서예연구회,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한글궁체사』다운샘, pp. 48~49 ♣


  “궁체(宮體)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쓰기 시작하여 생긴 서체 또는 필체인데 궁중에서 생긴 서체라고 하여 궁중서체(宮中書體)라고 하며 이 궁중서체를 줄여서 궁체라고 한 것이다. 

  궁체가 생긴 유래는 다음과 같다.

  한글 필사체 중에서 제일 먼저 생긴 정음체는 반듯하게 써서 판독하기는 쉬우나 쓰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고, 한자 서체를 모방한 방한체는 쓰기에는 빠르고 편하나 판독하기 어렵고 일부층에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일반화되기가 어려운 점이 많았다. 또 한글·한자를 혼용하는 혼서체 역시 쓰기에 곤란하고 일부 계층에만 쓸 수 있는 단점이 있다. 이상의 3가지 필사체를 보완하는 한글 고유성에 적합한 이상적인 서체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또한 조선 중기 이후로 한글의 생활화가 활발해지자 궁중에서도 교서(敎書), 언간, 전교(傳敎) 등에 종사하는 서사상궁(書寫尙宮)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모든 계층에서 한글의 필사화가 절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아름답고 쓰기 쉽고 독창성 있는 서체 연구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어 먼저 궁중에서 고안되어 쓰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게 생긴 서체가 바로 궁중서체인 궁체이다.

  궁체의 창안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오랜 기간이 지나오면서 차츰 아름답게 다듬어져 오늘날에 발견되는 높은 경지의 궁체가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궁체의 생성 변천 과정을 살펴보려면 먼저 정음체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초기 고딕형(전서형)의 정음체에서 후기 필사형의 정음체로 점점 변화하였고, 이 정음체가 방한체(선조·인목대비·효종·인선왕후 어필)에서 더욱 필사화되었고 다시 같은 방한체형인 현종어필에서 궁체의 특징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현종조(1660~1674)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궁체는 숙종조(1675~1720)에서 단아한 듯하면서 필력이 살아 있는 숙종어필, 인현왕후어필에서 더욱 발전된 글씨로 변하였다. 이때를 궁체의 완성 시기로 보는데 이 궁체는 더욱 발달하여 영·정조(1725~1800)에 이르러 더욱 완숙하고 찬연한 꽃을 피웠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궁체는 조선 말기까지 계속 궁중과 일반에서 쓰여져서 현재에 많은 궁체 전적들이 남아 있게 된 것이다.

  이 궁체는 당시에 편지쓰기, 소설베끼기 등 문자생활을 위한 수단으로 썼을 뿐 예술적인 면에서의 작품화를 목적으로 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필사 연대, 필사자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 또한 당시 궁체의 필사는 예술성에 근거를 두고 썼던 것이 아니고 궁중이나 상류가정에서 필수, 교양으로 썼기에 글을 쓴 사람의 재질과 성격에 따라 아름답고 개성이 특출한 필체가 생긴 것이다.”

♣ 박병천,『한글궁체연구』일지사, pp. 117~118 ♣


  "頒布體가 解讀에는 편리하였으나 書寫에 困難하였고, 效顰體가 쓰기에는 편리하였으나 解讀에 불편한 까닭에, 이 兩者를 止揚해서 國文字의 固有性에 알맞는 理想的인 書體가 또다시 要求된 것은 필연적인 現象이었다.

  <王朝實錄>을 통해서 보건대,「諺文」의 使用은 宮中에서 더욱 活潑하였고 政治文書에까지 參與하였다. 또, 宮中에는 중기 이후로 書寫尙宮이 그 수가 증가하게 되고, 朝野間의 交通도 상당히 活潑하였으니, 理想的인 國文書體의 연구와 그 필요성은 宮中에서 가장 앞선 것이었다.

  드디어 宮中에서 쓰인 書體가 標本이 되어 새로운 書體가 普遍化되었으니, 이것이 소위「宮體」라고 일컬어졌으며, 肅宗代엔 그 完成을 보았으리라는 實證을 肅宗과 仁顯王后 筆蹟에서 볼 수 있으며, 전자는 雄壯한 男筆의 象徵이며, 후자는 纖細한 女筆의 標本이 된다고 볼 수 있다.

  嚴正·端雅美麗·圓滿을 그 屬性으로 볼 수 있는 이 書體는 종전에 볼 수 없는 審美的인 境地에까지 到達하였으니, 爛熟相을 朝鮮朝 말기의 純元王后 筆蹟에서 용이하게 볼 수 있다. 宮體가 現代까지 그대로 傳統을 維持하고 있음을 볼 때, 그것이 國文書體의 理想點에 到達한 것이 아닌가 한다.”

♣ 金一根,『諺簡의 硏究』건국대학교출판부, pp. 142~143 ♣

 

♣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한글궁체사』한국한글서예연구회, 다운샘, 2009

『한글궁체연구』박병천 지음, 일지사 

『언간의 연구』김일근 저, 건국대학교출판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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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문자

   ⑴. 상형문자(pictogram)

        실제 물건이나 동물 또는 사람처럼 인식할 수 있는 형상을 말한다(주제를 나타냄).

  ⑵. 표의문자(ideogram)

       나무형태, 원, 십자 그리고 점과 선 같은 종합적인 기호와 상징을 말한다(동사처럼 의미를 전달).

  ⑶. 심리문자(psychogram)

       어떤 사물이나 상징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그 의미를 시각적으로 알아볼 수 없는 기호를 말한다.

       아마도 어떤 기쁨이나 불안 그리고 소망같은 미묘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에너지의 산물일 수 있다.

 

차자표기

  ⑴. 고유 명사 표기

      한자를 이용하여 국어의 고유 명사를 표기.(주로 인명, 지명 등에 국한하여 쓰였음)

  ⑵. 구결(口訣)

      ‘입겾’의 차자 표기. 구결은 한문 원문을 읽을 때 구절과 구절 사이에 들어가서 문을 분명히 하고 그

      렇게 함으로써 정확한 뜻을 파악하게 한다. 구결은 어조사(토) 그 성격이 같다고 할 수 있으며, 흔히

      ‘토’하고 부르기도 한다.

  ⑶. 이두

      국어의 단어(또는 어구)를 국어의 문장 구조에 따라 같은 뜻을 갖는 한자로 배열하고 조사, 어미 등과

      같은 문법 형태소를 표기하여 정확한 문맥을 나타냄으로써 보다 정확한 문장의 의미를 나타내기 위한

      표기.

  ⑷. 향찰(鄕札)

      신라의 문학 작품인 향가(鄕歌)를 표기. 향찰은 구결이나 이두와는 달리 한문 또는 한자 어구에 의존하

      지 않고 순수한 국어 문장을 표기하였으며, 향가 문학의 발달에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훈민정음

  세종 25년(1443년) 음력 12월 창제.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에 반포.

  세종 28년(1446년) 음력 9월 상한에『훈민정음언해』간행.

    창제 당시에는 ‘사나운 글자’를 뜻하는 ‘언문(諺文)’이라는 명칭으로 사용(한자를 상위에 두고 낮춰 부

    것). 조선시대에는 ‘반절(半切)’, 갑오경장 이후에는 ‘국문(國文)’, 주시경선생 이후에는 ‘한글’(한나라 글)

    로 불리움.

    ①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 당시 세종이 명명한 것으로,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

    ②언문(諺文): 훈민정음을 낮추어 부르는 이름으로 한자[眞書]에 대한 상대적 표현.

    ③반절(半切): 한자의 음을 기록하는 방법과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한 이름으로 최세진의『훈몽자회』범

       례에서 비롯됨.

    ④국문(國文): 갑오경장 이후에 국어의 존엄성을 자각하게 된 뒤부터 쓰인 명칭.

    ⑤한글: ‘하나의 글’이자 ‘위대한 글’의 뜻으로 주시경선생이 지은 명칭.

 

 

 

구개음화(口蓋音化)

  끝소리가 ‘ㄷ, ㅌ’인 형태소가 모음 ‘ㅣ’나 반모음 ‘ㅣ(j)’로 시작되는 형식 형태소와 만나면 그것이 구개

  음 ‘ㅈ, ㅊ’이 되거나, ‘ㄷ’ 뒤에 형식 형태소 ‘히’가 올 때 ‘ㅎ’과 결합하여 이루어진 ‘ㅌ’이 ‘ㅊ’이 되는 현상.

  예) ‘굳이’→‘구지’.  ‘굳히다’→‘구치다’

 

     (3). 중철(中綴): 표기에  발음과 기본형을 모두 표기하려는 의도가 변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16세기 초기문헌들에서 발견되고, 19세기까지 그 명맥을 유지하였다.

 

 

성조와 방점

  성조가 왼쪽에 점으로 표시되기 때문에 ‘방점법(傍點法)’이라 한다.

        성조(聲調): 음절 안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높낮이. 단어의 뜻을 본화하는변별적 기능을 가진다.

  ⑴. 거성: 갈(刀)→ 왼쪽에 한 점을 찍는다.(가장 높은 소리) ‘고조(高調)’

  ⑵. 상성: 돌(石)→ 점이 둘.(처음은 낮고 나중이 높은 소리) ‘저조와 고조’

  ⑶. 평성: 활(弓)→ 점이 없음.(가장 낮은 소리) ‘저조(低調)’

  ⑷. 입성: 붓(筆)→ 점을 더하기는 앞과 같으나 빠르게 끝난다.(빨리 끝나는 소리)

  ♣ 방점의 소멸: 근대 국어 시기부터 완전히 소멸.(국어에서 성조가 사라졌기 때문)

 

 

 

♣ 갑오경장이 진행되던 1894년 11월에는 모든 공문에 국문으로 본을 삼을 것을 명하는 칙령이 내려졌다. 이로써 오랫동안 한문이나 그 아류인 이두문을 공용문으로 사용해 왔던 제도에 갑작스런 변혁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종래에는 언문이라 불리면서 천시되던 한글이 비로소 국문으로 승격하게 되었다.

 

♣ 참고문헌

「선사바위그림의 출현배경과 의미」울산암각화발견30주년기념 암각화국제학술대회논문집, 아나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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