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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감상
2020년 11월 11일 (수)
이백열세 번째 이야기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칠월 칠석이라 가을 날씨 이른데
오동잎 소리에 먼저 깜짝 놀라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가지 못하는 강남의 나그네
여관에서 잠 못 이루고 빗소리를 듣네

七月七夕秋氣早칠월칠석추기조
梧桐葉上最先驚오동엽상최선경
欲歸未歸江南客욕귀미귀강남객
旅館無眠聽雨聲려관무면청우성
 
- 정호 (鄭澔, 1648~1736), 『장암집(丈巖集)』권1, 「칠석(七夕)」

   
해설


   정호가 함경도 유배 중에 지은 시다. 음력 칠월 칠석이면 아직 늦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지만, 이곳은 북쪽 지방이라 그런지 서늘하다. “오동잎 하나가 떨어지면 가을이 왔다는 걸 천하가 안다[梧桐一葉落, 天下盡知秋.]”라고 했던가. 오동잎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가을을 실감한다. 고향 생각이 간절하지만 마음대로 갈 수 없는 유배객 신세다. 마음이 착잡하니 잠이 올 리 없다.

   정호는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의 현손이다. 그는 1710년 함경도 갑산에 유배되었다. 당론을 일삼는다는 죄목이었다. 한때 함경도 관찰사를 역임한 그는 죄인의 신분으로 다시 함경도 땅을 밟았다. 당시 그의 나이 63세였다. 유배생활은 한두 해 만에 끝날 수도 있고,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더구나 갑산은 변방의 오지다. 이미 노쇠한 몸은 극변의 모진 날씨를 견뎌내기 어렵다. 이대로 이곳에서 죽을 가능성이 높다. 운이 좋아 일찍 이곳을 벗어난들 무엇하겠는가. 이미 정년퇴직할 나이다. 내 인생은 여기까지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정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젊은 시절에 읽던 주자(朱子)의 책을 꺼내어 일과를 정해 매일 읽었다. 때로 마음에 맞는 구절을 만나면 고달픈 신세를 잊기 충분했다. 두어 사람과 함께 읽으며 토론하니 읽으면 읽을수록 의미가 새로웠다.

   노년에 유배지에서 다시 책을 손에 든 정호의 모습은 그의 선조 정철을 닮았다. 정철은 56세 때 평안도 강계에 위리안치되었다. 위리안치는 집 주위에 가시나무를 둘러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형벌이다. 캄캄한 집안에서 정철은 『대학』을 읽었다. 소주(小註)까지 전부 외울 정도로 읽고 또 읽었다. 그것도 모자라 나무껍질을 벗겨 『대학』을 옮겨쓰고, 아침저녁으로 바라보며 사색에 잠겼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정철은 사면을 받았다. 그리고 그 이듬해 세상을 떠났다. 정호는 끝까지 손에서 책을 놓지 않은 선조 정철을 떠올리며 책을 집어들었을 것이다. 그는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학잠(老學箴)>을 지었다.

   사광(師廣)이 말했다. 

 “어려서 공부하는 것은 해가 처음 떠오르는 것과 같고, 젊어서 공부하는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으며, 늙어서 공부하는 것은 밤에 촛불을 켜는 것과 같다.” 그러니 어리고 젊을 때 공부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늙어서 배운다고 늦었다고 하지 말라. 밤에 촛불을 켜면 아무리 어두운 곳도 밝아지니, 계속 촛불을 켜면 햇빛을 대신할 수 있다. 촛불과 햇빛은 다르지만 밝기는 마찬가지이다. 밝기는 마찬가지이고 그 맛은 더욱 진실하다. 이 때문에 위 무공(衛武公)은 아흔 살에 시를 지었으니, 늙을수록 더욱 독실하여 나의 스승이다.  

師曠有言, 幼而學之, 如日初昇. 壯而學之, 如日中天. 老而學之, 如夜秉燭. 幼壯之學, 無以尙已. 旣老且學, 毋曰晚矣. 以燭照夜, 無暗不明. 燭之不已, 可以繼暘. 暘燭雖殊, 其明則均. 其明則均, 其味愈眞. 所以衛武, 九十作詩. 老而冞篤, 其惟我師.

   늙어서 공부하기는 젊어서 공부하기보다 어렵다. 눈도 침침하고 기억력도 떨어지니 공부가 잘 될 리 없다. 하지만 노년의 공부를 방해하는 건 무엇보다 자포자기다. 이 나이에 공부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냐는 생각이다. 하지만 인생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이다.

   정호는 갑산에 유배된 지 1년 만에 강원도 평창으로 유배지를 옮기고, 반년 뒤에는 완전히 풀려났다. 그의 나이 65세였다. 다시 환로에 오른 정호는 영의정까지 지내고 89세에 세상을 떠났다. 유배에서 풀려나고도 무려 24년이나 더 살았던 것이다. 갑산에 유배되었을 때 이제 내 인생은 끝이라고 포기했다면 말년의 화려한 성취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워라.”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는 말은 치열하게 살라는 뜻일테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우라는 말은 나이를 핑계로 포기하지 말라는 뜻이리라. 그런데 대개는 반대다. 영원히 살 것처럼 게으름을 피우고, 내일 죽을 것처럼 공부를 쉽게 포기한다. 세월이 지날수록 후회만 쌓일 뿐이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고, 영원히 살 것처럼 배운다면 적어도 후회는 남지 않을 것이다.

 


글쓴이 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주요 저·역서
『한국산문선』, 민음사, 2017(공역)
『일일공부』, 민음사, 2014
『동아시아의 문헌교류 - 16~18세기 한중일 서적의 전파와 수용』, 소명출판, 2014(공저)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글항아리, 2013 등

 

출처; 한국고전번역원 "고전산책" 메일링서비스의 수신한 글을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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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쉰아홉 번째 이야기
대취종필(大醉縱筆)
   

대취종필(大醉縱筆)

 

오래된 거문고 고요히 소리 없는 것은
태곳적 마음을 간직해서라네.
세상 사람들 종자기가 아니니
아양곡의 높고 깊은 정취 그 누가 알아줄까.
높고 깊은 정취 분별할 이 없다면
소리를 내든 말든 내 마음대로 하리.
아아! 세상에 백아는 늘 있었지만
종자기가 없을 뿐이로구나.

 

古琴澹無音고금담무음
中藏太古心중장태고심
世人非子期세인비자기
誰識峨洋高與深수식아양고여심
高深旣莫辨고심기막변
有聲無聲唯我志유성무성유아지
吁嗟乎無世無伯牙우차호무세무백아
而無子期耳이무자기이

-

심의

(沈義, 1475~?), 『대관재난고(大觀齋亂稿)』 권2

   
해설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분노와 그로 인한 슬픔이 잘 드러나 있다. 백아의 거문고 솜씨를 알아본 종자기와 같은 인물이 심의(沈義)의 주위에는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 불우한 처지가 서글펐던지 세상에 자신의 재주를 숨긴 채 냉소적인 태도로 일관하리라 다짐한다.

 

   비관적, 염세적 정취가 강하게 느껴지는 이 시의 제목은 ‘대취종필’이다. 즉, 술에 잔뜩 취해 내키는 대로 쓴 시라는 의미이다. 맨정신에 한시를 짓기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인데, 만취한 상태임에도 고사까지 응용해 자신의 심정을 술회한 것을 보면, 심의는 대단한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닐 수 없다. 그의 문집인 『대관재난고』에는 「인취종필(因醉縱筆)」, 「취서(醉書)」, 「취서신력(醉書新曆)」 등 음주와 관련된 작품이 다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는 종종 술을 마시고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시로 남겼던 것 같다.

 

   역사적으로 많은 시인이 술을 즐겼다. 음주를 통해 동양적 풍류의 극치를 보여 준 이백, 인생의 소중한 가치를 술과 사랑에서 찾았던 예이츠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시인과 술은 깊은 관계를 맺어 왔다. 한시의 경우 취중 작품 가운데는 이백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낭만적 정취를 그린 것이 많다. 위 작품처럼 분노와 슬픔을 표출하여 비관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은 그에 비해 드문 편이다.

 

   취중에 지은 시들은 온유돈후(溫柔敦厚)한 면이 결여되기 쉽다. 술로 인해 격앙된 감정과 과잉된 자의식으로 시의 내용과 표현이 다소 거칠어질 수 있고, 나아가 ‘낙이불음 애이불상(樂而不淫 哀而不傷)’과 같은 관념적인 작시 규범의 경계를 넘어갈 수도 있다. 비관적 분위기의 작품이 드문 이유는 이러한 위험성을 고려한 시인들의 자기검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도 위 시의 지은이인 심의를 포함해 많은 시인이 취중 작시를 그만두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술을 마셨을 때 낭만적 정감이 한껏 일어나거나 묵혀 두었던 내면의 목소리가 자연스레 나온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성의 통제를 느슨하게 하고, 진솔한 감정을 자연스레 표출하는 데는 술만큼 효과적인 것이 없다.

 

   심의가 이 작품을 쓰던 순간을 상상해 본다.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해 정신이 없는 가운데 가슴속 묵혀둔 울분을 거침없이 붓을 휘둘러 쏟아내는 모습을 말이다.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저게 뭐하는 짓이냐며 눈살 찌푸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는 당시 그가 지닌 고민을 솔직히 고백하고 마음속 울분을 씻어내는 행위였다. 이백의 “술 석 잔에 대도를 통하고, 한 말에 자연과 하나 된다.[三杯通大道 一斗合自然]”라는 시구는 어쩌면 이러한 카타르시스적 행위를 두고 한 말일지도 모르겠다.
김준섭
글쓴이김준섭(金俊燮)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원

 

주요 논문
  • 「졸옹 홍성민 문학 연구」, 성균관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4
  • 「지봉 이수광 당시관의 실제」, 한문학보 32권, 우리한문학회,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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