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채(神采)
역대로 서예작품을 평론하는데 모두 신채를 최고의 표준으로 삼았고, 서예가도 추구하였던 목표이다. 이
른바 신채는 서예작품에 표현된 정신· 신기· 풍채를 가리킨다.
서예 용필에서 제일 먼저 요구하는 것은 곧 필력이다. 필획의 기본 요구는 탄력성을 갖추는 것이고, 필획
사이는 조화와 호응을 이루며, 기맥이 관통하여 체세가 영활하고 생동함을 요구한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살아 있는 표현이고 생명의 표현이니, 정신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기초이다.
신채는 서로 다른 정신 면모의 표현으로 내재된 수양의 표현이므로 모방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직 숙련된 용필과 결체의 기본이 있어야 하고, 이는 단지 기술성의 문제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
이 되려면 풍부한 문화지식 · 생활관찰 · 품격수양 · 정취구상 등 모든 방면에서 많은 공부를 한 연후에 비
로소 숙련된 용필을 통하여 신채를 표현할 수 있다. 이 점을 소홀히 하면 설령 숙련된 기술이 있다 하더라도
쓰인 작품은 분명 신채가 있지 않을 것이므로 글씨 밖에서 글씨를 구하는 서외구서(書外求書)의 의의도 바
로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서사기법』156p ~ 157p, 주준걸(저) 곽노봉 · 이정자(옮김), 다운샘, 2013
서내구서(書內求書)와 서외구서(書外求書)
문자 발전이 오늘날에 이르러 필획의 결체가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사회적으로 약속된 정형화의 규범을
이루었다. 서예를 하려면, 이전 사람들의 이러한 문자의 용필과 포백 방면에 쌓인 풍부한 규율성의 성과를
서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서예를 배우려면 이러한 법을 따르는 것이 효과적인 지름길이다. 이는 서예를 배우
는 방법이니, 곧 서내구서(書內求書)이다.
서예를 처음 배우는 사람에게 '서내구서'는 의심할 필요가 없다. '서내구서'의 목적은 옛사람이 쌓은 기초
에서 앞으로 향하여 더욱 빠르고 멀리 나아가려고 하는 데에 있으니, 이것이 곧 창신이다. 이러므로 창신은
구체적 양식이 없고, '서내구서'로부터 나와 넓은 경지에서 새로운 계시를 구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서외구
서(書外求書)이다.
'서외구서'로 나아가는 길은 자매예술에서 찾는다. 예술의 종류는 비록 천변만화하더라도 도리와 규율은
공통적이다. 장회관이 일찍이 서예는 "형태가 없는 글씨이고, 소리가 없는 음악이다."라고 하였으니, 회화
의 구도는 곧 서예의 장법이나 포백이 아니겠는가? 문인화의 추상적 의미는 서예의 형상과 서로 비슷한 곳
이 있지 않은가? 그 묵색의 농담변화는 오늘날 서예에서 일으킨 풍부한 작용이라 하지 않는가? 이는 "신채
를 으뜸으로 삼고, 형질을 버금으로 삼는다."라는 최종적 요구와 더욱 일치하고 있다.
'서외구서'의 또 다른 길은 사회생활과 대자연에서 서예의 비결을 깨닫는 것이니, 이러한 예는 예로부터
많이 있었다.
장욱은 짐꾼과 공주가 길을 다투는 것(擔夫爭道)을 보고 필법을 깨달았고, 외로운 쑥이 스스로 떨치고 놀
란 모래가 앉아 나는 것(孤蓬自振, 驚沙坐飛)을 보며 서예를 생각하여 기이함을 얻었다. 회소는 여름 구름
에 기이한 봉우리가 많은 것(夏雲多奇峰)을 보고 글씨 형태의 변화막측함을 깨달았다. 황산곡은 산협에서
장년이 노를 크게 젓는 것(長年蕩漿)을 보고 필법을 깨달았다. 원나라의 선우추(鮮于樞)는 두 사람이 진창
에서 수레를 끄는 것을 보고 용필의 오묘함을 깨달았고, 문여가(文與可)는 뱀이 싸우는 것을 보고 초서가
크게 진보하였으며, 채옹(蔡邕)은 장인이 벽에 회칠하는 것을 보고 비백서를 창안하였다.
옛사람이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걷는다."라고 한 뜻은 예술 수양을 향상시키고 안목을 넓히며
느낌을 증가하여 스스로 정진하는 데에 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만 권의 책을 읽는 것은 만 리의 길
을 걷는 것만 같지 못하고, 만 리의 길을 걷는 것은 만 개의 봉우리를 오르는 것만 같지 못하다(讀萬卷書, 不
如行里路, 行萬里路, 不如登萬座峰)."라고 하였다. 이는 흉금에 있는 만 개의 골짜기와 기이한 산봉우리가
있을 때 글씨를 쓰면 기상이 뛰어나고 변화의 무궁함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 '서외구
서'로 자외공부(字外功夫)의 뜻을 더욱 강화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공력은 매우 강하지만 쓴 글씨는 오히려 정취와 맛이 없어 사람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원인
은 학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술은 공력, 즉 기술을 떠날 수 없지만 기술은 예술과 같지 않다. 기술은 단
지 예술을 위하여 쓰였을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 옛날부터 서예가는 다방면의 '자외공부'에 달관한 문인들
이 아닌 경우가 거의 없었다. 이는 물론 역사에 한정된 것이지만 글씨만 쓴다고 서예에서 많은 성취를 거둘
수 없음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서예의 최고봉은 최종적으로 '서외구서'에서 다방면의 '자외공부'를 갖
춘 사람만이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서사기법』167p ~ 171p, 주준걸(저) 곽노봉 · 이정자(옮김), 다운샘,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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