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한가득 우아한 미소를 담고 생활하시는

샌날 조성자 선생님!

항상 작품창작의 苦惱를 吐露하시면서도

힘들어 하시는 표정은 없으시고,

얼굴에 가득한 우아한 미소가 그 번뇌도 즐기심을 보여 주신다.

자주는 뵙지 못하지만 만나 뵐 때마다

習作하신 작품을 꼼꼼히도 설명하시면서 보여 주신다.

강한 실험정신과 작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연구, 노력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은

늘 나의 게으른 삶에 警鐘이 되지만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나는 懶怠한 본성으로 돌아와버린다.

선생님께서는 <학>을 주제로 하신

캘리그라피작품을 1984년부터 습작하시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셨다.

최초의 <학>작품은 일본전시에서 큰 호응을

받으셨던 작품이란다.

물론 昨今의 작품에서도 선생님의 캘리그라피작품은

한글서예 미래의 지향점이 되고 계신다. 

선생님의 캘리그라피작품을 대할 때마다

奇拔하신 표현에 놀람을 금치 못한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퐁~~퐁 샘 솟듯 하시니 말이다.

한글의 단어나 문장 그리고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회화적인 작품으로

구상하기가 정말 쉬운 작업이 아님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선생님의 작품에 感服할 따름이다. 

선생님의 다양한 작품을 언제까지나 접할 수 있도록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하면서,

여기에 선생님의 작품을 몇 점 올린다.

 

 

 

                                                                                                                                    학마을 24X27

 

 

                                    천년의 학 춤을 추는 솔향에 취해 70X135 

 

 

                                                                                                                                                                   학춤 33.5X22.5

 

 

                                                                  달빛아래 22.5X35

 

 

                                                                                                                 1984년 <학> 첫 작품 23.5X26.5

 

 

샌날 조성자 선생님

샌날 조성자 선생 頌歌

 

정암 선생 내린 혈통 아결한 천품으로

갈물에 손 담그고 꽃뜰 향에 취하거다

아무 때 솔밭 사이론 눈부신 학 노니다니.

 

옛 궁체 절마하여 회화경을 넘나드니

이금에 법고창신 샌날체에 완연하다

그 곁의 출람제자들은 정의돈목하나니.

 

                                      2011년 11월 26일 경유 김창룡 作(한성대학교 국문학 교수)

 

 

 

 

 

 

 

 

 

 

  2012년 1월 11일. 새해가 밝은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전통문화연구회 고전연수원에서 『詩經』강좌가 개설되어 1월 첫 주부터 수요일 오전에 시경공부를 하기위해 인사동을 나가게 되었다.

  오늘도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샌날 선생님 연구실 앞을 지나가게 되어 12월 마지막 주와 1월 첫 주 방학을 보내시고 나와 계시는 날이라 민낯인 관계로 전화로 선생님 음성이나 듣고 집으로 들어오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내 뜻대로 되지 않고 결국 연구실로 올라갔다. 선생님께서는 점심 약속으로 자리를 비우시고 차부자 선생님, 강순옥 선생님, 유해동 선생님이 점심식사를 하고 계시는 중이었다. 식사를 끝내고 서로 그간에 안부를 물으며 차를 마시고 있는 동안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선생님께서는 늘 변함없는 모습으로 저를 반겨주셨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한성대학교 국문학과 김창룡 교수님께서 지으신 “샌날 조성자 선생 頌歌"를 보여 주셨다. 송가를 읽고 나서 내 머릿속의 기억상자가 열려 2005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쭉 지나갔다. 『한글궁체 옥원중회연 자전』을 가지고 처음 찾아 뵌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는 궁체 사랑과 늘 작품의 창작에 대해 고뇌하시고, 또 서예에 관한 학문을 꾸준히 연구하시고, 해오름 회원님들 못지 않게 저까지 변함없는 사랑으로 대해 주시면서 살아오신 그간의 모습이 그대로 오롯이 담겨있어 더 이상의 표현은 군더더기가 될 뿐이었다.

  송가를 보고 새삼 선생님에 대한 감사의 말씀도 못드리고 지내온 지난 시간의 죄송함이 밀고 올라왔다. 늘 표현이 부족한 내 본성을 빌미로 그냥 그대로 선생님께서 알고 계시겠지... 하면서 선생님을 뵈었는데...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있기까지 부족한 저에게 용기와 아낌없는 칭찬을 해주신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지금과 같이 거기 그 자리에서 저의 큰나무로 늘 건강하게 계시기를 소망합니다. 앞으로 펼쳐 질 제 삶에 있어서 어려울 때나 기쁜 일이 있을 때 큰나무 그늘에서 쉬어 갈 수 있도록...

 

 

아래의 글은 선생님께서 2010년 각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지셨을 때 쓰신 작가의 글과 프로필을 옮겼다.  

살아온 여정

 

  나는 정암 조광조 할아버지의 17대 손녀로 태어났다. 1934년생 개띠. 2남 2녀 중 막내이다. 나는 국민학교 때부터 붓글씨를 썼다. 그 시절에는 왜정시대여서 학교에서 습자를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들은 누구나 다 붓글씨를 썼다. 5학년 때 해방이 되었다. 6학년 때 군 대항 대회에 나가서 학교대표로 상을 받았는데 지금 그 작품이 남아있지 않다. 고등학교 2학년 때(6. 25 직후) 이철경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때 선생님의 권유로 서예대회에 나가서 수상하였는데 역시 작품은 남아있지 않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학교에 서도반이 조직되었고 책걸상도 없는 교실 마루바닥에 엎드린 서도반 친구들이 모여 서예연습을 하곤 하였다.

  1962년 나는 결혼을 했고 삼남매를 두었다. 1972년 이철경 선생님 금란여고 교감 시절, 공사다망하신 관계로 나는 꽃뜰 이미경 선생님께 인계되었다. 기초 연습부터 작품구성에 이르기까지의 자상하고 철저하신 지도로 나의 오늘이 있는 것이다. 그 시절 우리 수요회원들은 꽃뜰 이미경 선생님의 인솔하에 낙선재 정서각에 가서 옛 어른들의 육필을 직접 감상하고 임서를 하던 기억들은 지금도 가슴속에 고귀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서예에 대한 심오한 이론은 잘 모르더라도 나는 반듯하게 앉아 먹을 갈고 붓을 잡은 후 옷깃을 여미고 글씨를 쓰는 그 순간이 좋아서...

  한 때 오랫동안 공모전에 시달리면서 힘들고 괴롭기도 했지만, 그러나 시간을 잃어버린 채 연습에 몰두했던 그 시절이 있었기에 글씨는 익어갔고 그 사회에서 지나치게 뒤지지 않는 내가 되지 않았을까 여겨진다. 음악을 들으며 리듬에 맞추어 붓글씨를 쓰노라면 이 세상의 행복은 다 내것이요 스스로 황홀경에 빠지는 신비의 세계. 나만의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무아지경에 빠진다. 지금도 여전히 나는 붓을 잡고 평범한 행복속에 음악을 들으며 붓글씨를 쓴다.

  돌아보니 가족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가족보다는 내 행복만을 추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침이고 저녁이고 때를 가리지 않고 글씨에 몰두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도 못해 먹였고 많이 놀아주지도 못했다. 그러나 아이들이 고3시절 늦게 귀가하는 시간까지 또 남편이 늦게 돌아오는 시간까지 나는 글씨를 썼으나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거나 짜증이 나거나 초조하지는 않아 좋았던 것 같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제때에 못 담고 뒤늦게 부랴부랴 담구던 일, 겨울 옷을 미리 준비 해 두지 못해서 추워도 못입고 나가던 일, 이런저런 일들은 아마 동료들은 다 같이 겪는 일이었을 것이다.

  돌이켜 보니 특히 남편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또한 감사하는 마음이 깊다. 때때로 일본에 가면 일정이 빽빽한데도 불구하고 나라에까지 가서 지필묵을 사다 주면서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주던 그 말 한마디...

  나는 용기백배 그 말에 보답하기 위해서 꾸준히 공부했다. 가족들이 있어 소중한 사랑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서예는 나의 인생이요 나의 정신이며 나의 철학이요 나의 모습이다. 얼마 전부터는 서예이론의 모자라는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뜻을 같이 한 동료들이 모여 "한국한글서예연구회"를 1998년에 발족하여 오늘 현재까지 서예와 관계가 깊은 국문학계 교수님, 서울대 김진세 명예교수님, 연세대 홍윤표 교수님을 초빙하여 강의를 들으며 차곡차곡 이론을 다져가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할 것을 다짐해 본다.

  끝으로 이미경 선생님의 연세가 93세이신 관계로 괴롭혀 드리지 않기 위하여 이번에 축사를  못 받았다. 서운하지만 자연의 순리에 따르기로 마음 먹었다. 부디 건강하시고 백수를 다 하시기를 기도 드린다.

               

 

샌날 · 초림 조성자(趙成子)

 

[경력]

1995년 대한민국 서예대전 우수상 수상(한국미술협회)

대한민국 서예대전 심사위원 및 운영위원

갈물한글서회 고문

故 갈물 이철경 선생 사사

꽃뜰 이미경 선생 사사

日本 東京 故 靑山杉雨 선생 사사

 

[저서]

2000 농가월령가, 옥루연가(공저, 해오름한글서회)

2001 궁체이야기(공저, 한국한글서예연구회)

2003 역주 낙성비룡

2004 여사서(공저, 해오름한글서회)

2006 조선시대 문인들과 한글서예(공저, 한국한글서예연구회)

2009 조선왕조실록으로 보는 한글궁체사(공저, 한국한글서예연구회)

 

[학술발표]

2006 "한글서예의 개관" 연구발표(한국서학회와 미국 U.C.L.A공동주최)

 

     [2010 갤러리 각 기획초대전 현대 한글 서예의 역사 50년 샌날 조성자 초대전 작가의 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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