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우청 2012. 4. 26. 20:22

꽃비(김사림)

 

먼 산에

꽃비

비그르르 돌아

마을에

내려서

살구꽃 된다

 

살구꽃

환한 마을을

비그르르 돌아

뜨락에 내려서

내려서는

나비가 된다

 

 

 

꼬까신(최계락)

 

개나리 노란

꽃 그늘 아래

 

가지런히 놓여 있는

꼬까신 하나

 

아기는 살짝

신 벗어 놓고

 

맨발로 한들한들

나들이 갔나

 

가지런히 기다리는

꼬까신 하나

 

 

 

방울새(김영일)

 

방울새야 방울새야

조로롱 방울새야

간밤에 고 방울

어디서 사 왔니

조로롱 고 방울

어디서 사 왔니

 

방울새야 방울새야

조로롱 방울새야

너 갈 제 고 방울

나 주고 가렴

조로롱 고 방울

놔 두고 가렴

 

 

 

구슬비(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보슬보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으면서 솔솔솔

 

 

 

과수원길(박화목)

 

동구 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이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반달(윤극영)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은하수를 건너서 구름나라로

구름나라 지나선 어디로 가나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

 

 

 

파란 마음 하얀 마음(어효선)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여름엔 여름엔 파랄 거여요

산도 들도 나무도 파란 잎으로

파랗게 파랗게 덮인 속에서

파아란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우리들 마음에 빛이 있다면

겨울엔 겨울엔 하얄 거여요

산도 들도 지붕도 하얀 눈으로

하얗게 하얗게 덮인 속에서

깨끗한 마음으로 자라니까요

 

 

 

오빠 생각(최순애)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 오빠 말 타고 서울 가시며

비단 구두 사 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똘귀똘 귀뛰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 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해(海)에게서 소년에게(최남선)

 

1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버린다.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2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내개는 아무것 두려움 없어

육상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결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3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있거든 통기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이 있건 오너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4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조그만 산(山)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벽만한 땅을 가지고

그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5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깊고 너르고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오든 더러운 것 없도다.

저 따위 세상에 저 사람처럼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

 

6

처얼썩 처얼썩 척 쏴아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 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 크고 순진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맞춰 주마.

처얼썩 처얼썩 척 튜르릉 꽉.